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나헴 베긴 (문단 편집) == 평가 ==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 현대화를 주도하고, 이집트와의 평화 협정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총리로서 비판도 만만치 않은데, 일단 무엇보다도 베긴은 '''현 [[리쿠드당]]의 창당주'''이다. 때문에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 국가들에 비해 강경한 노선을 견지했다. 젊은 시절이었던 이스라엘의 건국 초기에 과격 무장단체 이르군을 이끈 인물이었고,[* 제1차 중동전쟁을 전후로 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테러 조직이다. 당시 사용하던 방식은 군대가 포위한 다음에 집을 버리고 항복할 시간을 15분 동안 주고 그 뒤에 모든 사람들을 강간 살해, 노부부를 집안에 가두고 집을 폭파, 갓난아이를 업은 아랍인 여성을 불러서 강간한 다음에 일이 끝나고 퇴각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여성을 모조리 살해, 사프사프 지역에서는 50여 명의 남자들은 우물에 던져넣고 총을 쏴서 죽이고 14세 여아를 포함한 적어도 4건의 강간살해, 사사에서는 백기를 확인하고도 1000여 명이 죽고 남은 인원은 마을에서 추방, 살라하에서는 94명이 폭사 등이 있다.] 수상 재임 시절에는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 레바논 침공 등을 자행했다. 그나마 같은 리쿠드당 소속의 후임 총리들인 [[아리엘 샤론]], [[베냐민 네타냐후]] 등의 행적에 비하면 온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긴은 재임 중 [[레바논 내전|내전이 한창중인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는 베긴에게 있어 매우 큰 과오로 남았다. 이집트와는 평화 협정을 맺었으면서, 정작 같은 아랍권 국가인 레바논의 내부 문제에 무력 개입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 이것은 훗날 베긴이 사임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